2021년 신년사
손희송 베네딕토 주교
학교법인 가톨릭학원 상임이사
도덕적 용기
2017년에 미국 공군사관학교의 생도 기숙사 외벽에 흑인을 비하하는 인종차별 낙서가 발견되었습니다. 당시 미국에서는 흑인을 비하하고 폭행하는 사건이 여러 번 발생하여 사회 분위기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 와중에 미국 군대의 엘리트를 교육하는 곳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났으니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학교장 실베리아(Jay B. Silveria) 중장은 사태를 수습하고자 전교생과 교수진을 모아 놓고 훈시를 합니다.
학교장의 훈시는 간략했지만, 매우 호소력이 있었습니다. 그는 인종차별적인 발언에 대해 미래의 장교로서는 물론 한 인간으로서도 마땅히 분노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그리고 그런 못된 생각에 대한 적절한 대응은 더 나은 생각을 하는 것이라고 확신 있게 말합니다. 더 나은 생각이란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 다양성이 지닌 힘이 함께 모일 때 훨씬 강해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요지의 발언을 합니다. 그러고는 다양성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성별이 다르다고 인종과 피부색이 다르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존엄과 존중으로 대할 수 없으면 당장 나가세요(If you can’t treat someone with dignity and respect, then you need to get out)!”라고 일갈합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말을 기억하면서 ‘도덕적 용기’를 가지라고 촉구합니다.
“다른 사람을 존엄과 존중으로 대하라.”는 실베리아 중장의 메시지는 지금 우리 사회에도 꼭 필요한 메시지입니다. 우리 사회는 편 가르기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자신이 속한 조직의 이념은 무조건 옳고, 다른 조직의 이념은 무조건 배척하는 ‘진영 논리’가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내 편의 이익을 위해서는 억지와 말 뒤집기도 마다하지 않고, 상대편은 적으로 간주하면서 온갖 험한 말로 공격하는 경향이 점점 더 강해집니다. 이런 그릇된 경향과 싸우다 보면 똑같아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프리드리히 니체는 “괴물과 싸우는 자는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을까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편 가르기에 적절히 대응하는 길은 ‘더 나은 생각과 자세’를 갖추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소중하다는 생각에 바탕을 두고서, 나와 다른 사람도 존엄과 존중으로 대하는 도덕적 용기를 기르는 것입니다.
도덕과 윤리는 고리타분한 것이 아닙니다. 공동체적 삶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입니다. 사회나 단체에서 구성원들이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규범과 삶의 자세가 있습니다. 그게 바로 도덕이고 윤리입니다. 복잡한 도시에서 버스들이 각자의 목적지까지 승객을 안전하게 모시기 위해서는 노선을 지켜야 합니다. 기차가 앞으로 나가려면 레일 위에 있어야 합니다. 버스 노선과 기차 레일 같은 것이 도덕이고 윤리입니다.
선진국은 경제만이 아니라 정신적, 도덕적인 수준도 높은 나라입니다. 우리나라가 진정으로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면 도덕적 용기를 지닌 이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2021년에는 나부터 도덕적 용기를 갖도록 정신을 가다듬고 마음을 키우면 좋겠습니다. 모든 변화의 출발점은 자기 자신이기 때문입니다.